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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생각

겨울의 기억

by 그럼그렇지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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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각 계절마다 기억하는 느낌이나 감성이 있을까? 시골에서 자란 나는 계절, 분위기마다 기억하는 느낌이 있다. 나에게 어린 시절 겨울의 느낌은 까끌까끌한 담요의 느낌. 아궁이에서 나는 불냄새. 온기 도는 방에서 먹은 동탯국. 차갑게 언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을 따뜻한 아랫목에 넣었을 때 몸에 퍼지던 온기. 적다 보니 생각보다 많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우리 집은 아궁이에 불을 때는 집이었다. 안방 뒤쪽에 아궁이가 있는 작은 공간이 있고 거기에 나무 가지, 마른풀 같이 풀을 피울 수 있는 재료들일 끝쪽에 쌓여 있었다. 공간 전체는 연기며 그을림으로 인해 벽 전체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 공간 쪼그려 앉아 불을 피우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장작이 탈 때는 눈이 맵고 콧물이 나게 만드는 연기로 공간이 가득 찼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냄새는 아침, 저녁 아궁이에 불을 지피신 이유로 불 냄새로 기억된다. 반대로 여름 할아버지의 살 냄새는 약간 시큼한 땀냄새였다. 하지만 한 번도 기분 나쁜 냄새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그 품으로 더 파고들었었다. 불을 지피는 공간 맞은편에는 부엌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부엌에서 목욕도 하고 엄마가 밥을 차려 놓고 외출하시면 엄마의 쪽지를 확인하고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딱 우리 아들의 나이였던 것 같다. 

눈이 많이 온 날 아침잠이 많은 나를 깨우기 위해 할아버지가 하셨던 첫마디는 "눈 많이 왔어 빨리 일어나 봐" 셨다. 그러면 나는 내복 바람으로 거실로 나가 눈이 쌓인 밖을 내다보며 하루종일 놀 생각에 가슴이 마구 부풀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완전 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가면 하나 둘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비료포대를 구해 짚을 가득 채우고 개봉하지 않은 포대의 양 끝에 구멍을 내어 줄을 매면 썰매가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한 명이 썰매에 앉고 한 명이 끌어주다 이내 싫증이 나면 높은 언덕으로 썰매를 들고 갔다. 

끈만 매면 똑같다.

오전 내내 눈썰매를 타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 간단히 밥을 먹고 약속이나 한 듯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면 다시 썰매를 타거나 눈사람을 만들고 손 발이 얼기 시작하면 마을 회관으로 간다. 놀이터 중앙에는 마을회관이 있었고 2층은 아이들이 공부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이 있었다. 여기는 도서관을 가장한 우리의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 여기는 등유 난로가 있어 언 몸을 녹이고 부루마블, 호텔왕 같은 보드게임들이 있어 종일 재밌게 놀 수 있었다. 나중에는 여기에서 화투도 많이 쳤었다. 지금에야 핸드폰이 있어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저 당시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잘 찾지도 않았지만 찾으려면 온 동네 전화를 돌리고 직접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마저도 워낙 외지고 숨겨진 공간이 많아 실패하기 일쑤였다. 보통 어둑어둑해지고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6시쯤 되면 집집마다 아이들 이름 부르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 당시 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나에게 기억되는 겨울의 느낌은 아늑하고 따뜻한 기억이다. 언몸을 녹이는 따뜻한 아랫목의 담요 안은 누구도 침범하고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훨씬 온도도 높고 편리하지만 따뜻함과 안락함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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