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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하지만 넓은 지식

🏯 조선의 야간 알바?

by 그럼그렇지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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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파루군’의 비밀스런 밤 일과를 들여다보다



🌙 파루군, 조선의 밤을 지킨 숨은 영웅들

조선시대 한양의 밤거리는 어땠을까요? 요즘처럼 가로등이 켜진 것도 아니고, CCTV가 감시하는 것도 아니던 시절. 그 어둠 속에서 시민의 안전을 책임졌던 이들이 바로 **‘파루군(罷漏軍)’**입니다.

‘파루(罷漏)’는 글자 그대로는 ‘시간을 알리다’는 뜻으로, 물시계에서 물이 다 빠지는 시간을 기준으로 밤의 경과를 측정하던 데서 유래합니다. 이들을 ’군(軍)’이라 부른 이유는, 단순 민간인이 아니라 일정한 훈련을 받은 순찰 조직이었기 때문이죠.



⏰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파루군의 하루 루틴

파루군의 활동 시간은 지금 기준으로 야간 근무 시간대와 거의 동일했습니다. 오경(五更), 즉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한양 도성 내 주요 거리와 골목을 순찰하며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상황을 보고하거나 직접 제지하기도 했죠.

그들의 주요 임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 화재 예방 및 감시
• 🕵️‍♂️ 도적 및 불온행위 감시
• 🕰️ 시간 알림(종이나 북으로 경시報時)
• ❌ 야간 외출 단속 및 불법 상행위 제재

특히 한양은 나무로 된 가옥이 밀집한 지역이 많아, 작은 불씨 하나도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파루군의 감시가 필수였습니다.



🛡️ 무기는 곤봉, 전투력은 중급?

파루군이 사용한 무기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곤봉(나무로 만든 막대기)**과 호각입니다. 곤봉은 위협이나 제압용으로 사용되었고, 호각은 이상 상황을 알리거나 동료를 호출할 때 쓰였죠.

실제로 파루군 중 일부는 하급 무사 출신이거나 군사 훈련을 받은 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기본적인 무술과 체력 훈련은 필수였습니다. 물론 모든 파루군이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도심의 치안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들의 존재감도 점점 커졌습니다.



🧥 파루군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흥미롭게도 파루군의 복장은 일반 관군과는 달랐습니다. 활동성을 중시한 복장이었으며, 어두운 밤에 눈에 잘 띄지 않도록 검은색 계열의 의복을 착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삿갓이나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신분 노출을 피하거나 위협 요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계절별로 달라지는 고충

여름엔 모기와 열대야, 겨울엔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 속에서 파루군은 쉬지 않고 도성을 돌았습니다. 특히 한겨울 순찰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는데요, 가끔씩 몸을 녹이기 위해 공중목욕탕 근처에서 잠시 쉬거나, 담벼락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잠시라도 긴장을 놓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이들은 늘 촉각을 곤두세운 채 근무를 이어갔습니다.



🧭 현대의 순찰대와 어떤 점이 닮았을까?

지금의 야간 경비원, 지하철 보안관, 치안 순찰대 등과 파루군은 여러 면에서 유사합니다.
모두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문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며,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죠.

하지만 파루군은 기계나 전기조차 없던 시대, 오직 사람의 발과 눈, 귀만으로 도시의 질서를 유지해야 했기에 훨씬 고된 일이었습니다.



✨ 그들을 기억하며

역사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왕과 전쟁, 정치 이야기만을 기억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낸 이들 덕분에 조선의 밤은 평온할 수 있었습니다.

‘파루군’이라는 작은 이름 하나 속에는 밤을 품은 도시와, 그 어둠 속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 블로그 요약

요약문:
전등도, CCTV도 없던 조선의 밤. 그 어둠을 걷고 시민의 안전을 지킨 ‘파루군’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역사 속 직업의 의미를 다시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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